박현주의 '빛의 모나드', 그 영원의 세계

박현주의 '빛의 모나드', 그 영원의 세계

변종필(미술평론가)

 

 

박현주 작가하면, ‘빛’이라는 주제 하에 화려한 금빛을 발산하는 육면체의 금박나무패널박스, 수평과 수직의 기하학적 화면구성, 생기 있는 파스텔톤의 긴 바(Bar)와 점(Dot)이 이뤄내는 착시 효과 등을 선보이는 작업이 떠오른다. 평행선, 동심원과 같은 단순 조형요소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색채의 다중 조합과 배치를 통한 진동이나 동요를 일으키는 시각적 착시를 유발하는 작업을 통해 ‘빛’에 대한 탐구를 지속해왔다. 시각적 효과라는 측면에서는 옵티컬아트와 맥락적 유사함을 지녔지만,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작가가 추구해온 일관된 작품세계가 단순히 특정 미술사조에 국한되지 않은 차별화된 형식과 내용으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이끌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박현주의 작업은 크게 캔버스를 이용하는 평면작업과 반 입체의 성격을 띠는 입체작업으로 양분되는데 이번 <빛의 모나드>전시는 각각의 유니트(unit)들이 모여 무리를 이루는 식의 공간 설치 방식을 채택한 입체작업이 주를 이룬다. 과거 다양한 조형적 실험을 시도했던 화면구성에서 한층 간결하고 단순해진 표현형식을 취하였다. 기존의 평면화면 속 바(Bar)와 점(Dot)이 독립적 개체로 분화되어 입체화한 형식이다. 특히 개별화된 유니트 표면을 스폰지 로울러를 이용하여 그라데이션 효과를 극대화하고, 단색조에서 다색조에 이르는 색의 스펙트럼을 넓힌 것이 눈에 띈다. 마치 프리즘을 통과한 빛이 다양한 색조로 분사되어 입체표면을 덮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옵티컬 아트의 시각적 효과를 이끈 것이 선(線)이었다면, 박현주 회화의 시각적 효과를 리드하는 것은 색(色)이다. 박현주 회화에서 만날 수 있는 독자성이다.

색과 더불어 박현주 입체작업의 시각효과를 신비롭게 만드는 것은 화려한 금박이다. 그녀 작업의 핵심으로 알려진 금박기법은 동경예술대학 재학 중 유화재료기법연구소에서 해마다 실시하는 모사실습수업과정에서 프라 안젤리코의「리나월리(Linaiuoli)성모자상」을 모사할 당시 그 그림에 사용된 조형기법에 매료된 이후 사용해온 기법이다. 재현을 통해 표현방법을 탐구하던 중 우연히 마주하게 된 금박기법이 현재의 작품세계를 이끌었다. 한마디로 황금배경 템페라의 성스러운 빛이 ‘빛’이라는 근원적인 명제에 이르게 된 계기였다.

 

“성상화는 내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시각 경험 중 하나였다. 그것을 처음 보았을 때 마치 그림 속에서 빛이 나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템페라 물감의 선명한 색채와 눈부신 금박은 서로 강하게 대비되면서도 훌륭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Inner LightDocumentation, 2003 중에서)

 

박현주의 금박면은 ‘현실과 비현실, 물질과 정신, 입체와 평면, 수직과 수평, 사각과 원 등의 서로 모순되면서 대조되는 요소들이 한 화면 안에서 어우러질 수 있는 세계임을 보여주고 싶다’라는 그녀의 삶의 태도를 비추는 거울이다. 작품에서 금박면은 정면이 아닌 측면에 표현되어 벽면에 설치된 다수의 오브제가 측면끼리 정반사를 일으키며 자체적으로 빛을 발산하는 듯한 신비로움을 준다. 또한, 오브제가 서로 부딪히는 반사효과로 평면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이처럼 금박면은 색의 시각적 효과와 더불어 그녀의 작품세계를 특징짓는 조형요소로 각별하다.

 

박현주의 전시에서 표현기법의 개별성과 더불어 주목 할 것은 ‘빛의 모나드’라는 전시 타이틀이다. 박현주는 지금까지 16번의 개인전을 열었는데, 그동안 전시의 타이틀로 ‘빛’을 직접적 드러낸 것은 2008년부터이다. ‘beyond of Light’(2008), ‘diagram of Light’(2009), ‘floating Light’(2011), ‘빛의 성전’(2013), ‘빛을 쌓다’(2014)까지 이어진 전시명에서도 빛을 탐구해온 작가의 여정을 읽을 수 있다. ‘beyond of Light’, ‘diagram of Light’, ‘floating Light’ 까지는 빛이 지닌 파장, 흡수, 반사 등 빛의 물리적 특성 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면, ‘빛의 성전’과 ‘빛을 쌓다’에서는 빛의 성질보다 궁극에 빛으로 이뤄내고 싶은 성과(결과물)에 무게를 두었다. 이는 10년(1997~2007)간 지속했던 연작「Inner Light」에서부터 축적해온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인 삶의 자세와 연관 있다. 빛을 좇아가는 과정을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여기며 외형적 화려함보다 내면의 깨달음을 중시했다. 성스러운 빛을 발산하는 성전처럼 물리적 특성이 아닌 정신적 깨달음을 주는 빛의 표현에 몰입했다. <빛의 모나드>전의 작품들도 비슷한 연장선에 있다.

작가는 모나드(monad, 單子) 의 사전적 정의인 ‘무엇으로도 나눌 수 없는 궁극적 실체로, 비물질적이며 우주의 일체의 사상을 표출하는 우주의 생명 활동의 원리’의 측면에서 접근했다. 작업에서 반복되는 오브제의 유니트가 ‘단자를 궁극의 원리로 하여 형이상학을 구성’하는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과 상통한다는 개념으로 보고 있다. “유니트들은 개별적이면서 동시에 전체 그림의 한 조각을 이루며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본질을 추구하는 나의 작품 성향은 우리의 감각과 사유가 미치지 못하는 곳을 그리워한다. 각각의 모나드로 고독에 처한 우리는 벽을 허물고 하나가 되는 전체를 꿈꾼다.”고 적은 작업단상은 라이프니츠가 모나드론에서 작은 것(소우주)에서 큰 것(대우주)으로, 단순(하나)에서 복잡(여럿)으로 이동한 후 다시 복잡에서 단순으로,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회귀하는 지각 이동을 강조한 부분과 일맥 상통한다. 단순실체인 모나드는 각자의 관점에서 우주를 본다. 때문에 각자의 관점만큼 다양성이 생기고, 그에 따른 질서가 마련된다. 박현주의 ‘빛의 모나드’는 라이프니츠 모나드론의 근본정신에서 출발하고 있다. 라이프니츠가 모나드의 구성원칙을 부분과 전체라는 형이상학적 구도로 설명한 것처럼 박현주는 빛의 단위를 근본적인 형이상학으로 접근했다.

박현주는 누구보다 자신의 창작과정을 철학적으로 사고하고 접근하는 것을 습관화한 작가이다. 이는 자신의 삶과 예술을 그림이 아닌 언어로 솔직히 토로한 작업의 단상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내가 꿈꾸는 빛의 세계는 물질과 비물질(정신, 영혼)의 경계 위에서 마치 공기 중을 부유하는 나비가 바라보는 세계와 닮아 있다. 우리는 어디에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찌 보면 우리의 삶 자체가 미지의 세계를 쫓아가는 ‘빛의 시각적 환영’ 속에 있는 것인지 모른다’는 글이나 ‘작업이 삶의 에너지와 위로를 주고 생명의 빛으로 향하는 길을 인도하는 삶을 사랑하는 이유인지 모르겠다’라는 고백은 솔직한 자기고민의 흔적이다.

철학적 사고의 깊이만큼 창작과정이 온전히 성과로 이어지는 것은 작가의 몫이다. 이 점에서 박현주가 그린 빛의 세계가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의 핵심주제인 ‘모나드, 신, 세계’와 어떻게 연결되는가는 그녀의 예술적 가치와 의미를 해석하는 또 하나의 기준이 될 것이다.

 

박현주는 ‘모나드’를 이번 전시의 핵심어로 삼았지만, 실질적으로 <빛의 모나드>를 통해 표현하려는 세계는 기존 작업과정과 마찬가지로 자아성찰을 위한 자기수행과 치유로써의 빛이다. “서로 모순되면서 대조되는 요소들이 한 화면에서 어우러질 수 있는 그런 세계, 불확실하고 어두운 오늘날의 현실에서 삶에 지친 영혼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 수 있고 위로 받을 수 있는 그런 세계를 그리고 싶다.(작가노트)”는 고백의 실천이다. 여기에는 동서양의 구분도 없다. 금박기법은 성상화에서 차용했지만, 정작 추구하는 작품세계는 동양적 정신세계에 밀착되어 있다. 이는 불교적 세계관을 지닌 용어나 화제에서 드러난다.「Inner Light」Documentation 에서 언급했던 ‘공관(空觀, 현상의 배후에 고정적인 실체는 없다)’처럼 이번 전시에서도 ‘니르바나’(Nirvana, 涅槃, 일체의 번뇌를 해탈한 불교의 최고의 높은 경지) 라는 범어를 화제로 삼은 부분에 지향하는 세계관을 드러냈다. 그녀에게 빛은 동서양의 종교를 초월한 희망이며, 살아갈 수 있는 생의 에너지이다.

 

빛은 초월적이다. 특정 공간에 가둘 수 없고, 특정 이미지로 고정할 수 없다. 절대공간이나 절대시간이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절대 빛은 없다. 라이프니츠의 모나드체계가 오감과 과학체계의 모든 것을 뛰어넘는 철학정신이었듯이 빛은 하나의 형식과 내용으로 규정짓거나 가둘 수 없다. 단지 머무는 시간과 공간에 따라 실체와 존재를 지각하게 하는 힘으로 작용할 뿐이다. 빛을 인간의 시각 속에 잡아두겠다는 시도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이 점에서 박현주의 이제까지 작품이 빛을 인공적으로 연출하는 제한적 시도였다면, 이제는 작품의 내면과 자연이 발산하는 빛의 특성이 한층 자연스럽게 만나 빛의 숭고한 느낌이 발산되도록 연출하는 방법도 시도할만하다.

궁극에 박현주의 작품이 뿜어내는 빛의 일루젼은 시각과 촉각으로 확인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신념의 표현이다. 자연의 참된 원자인 모나드를 ‘빛의 모나드’라는 자신만의 빛의 세계로 이끌어낸 영원(永遠)의 투영이다. <빛의 모나드>전은 한 곳에 머물지 않는 빛처럼 언제나 자기변신을 꾀하는 박현주 작가의 섬세한 지각이 발현하는 또 다른 빛의 아우라를 만날 수 있는 기회이다.